역대급 악역 하비에르 바르뎀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재해석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살인은 있으나 감정 섞인 폭력은 없다. 이 무슨 개똥같은 말인가? 이 영화가 그렇다. 문제 해결 의지도 없고 정의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정의는 없는 게 아니라 무력하다. 정의로워 보이지만 늙수그레한 노인은 무력하고 그래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 걸까. 영화는 끝끝내 폭력적이고 죽는 이는 자신이 왜 죽는지 모른다. 한 다스가 넘는 사람이 죽어 나가지만 누구의 죽음 또한 자세히, 또는 정성들여(?) 묘사하지 않는다. 감독은 뭘 말하려는 걸까. 다섯 번을 봤는데도 또 머리가 복잡하다. 영화를 요따구(?)로 만든 코엔 형제, 참 대단한 감독이다.



"뭘 얻기 위해 내기를 하는지 알아야 하죠."


안톤(하비에르 바르뎀)은 보안관을 죽이고 도망치다 들어간 가게 주인에게 동전을 던지며 맞춰보라고 한다. 살기 가득한 표정을 느낀 주인장이 한 말이다. 안톤의 살인에는 악의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냥 22년간 세상을 굴러다니다 던져지는 동전처럼 인간의 인생도 우연히 결정된다. 삶의 보잘것없음을 말하는 건가. 우연히 결정되어 버리는 인생의 조건에 관한 걸까.



모스(조슈 브롤린)는 사막에서 사냥하다 우연히 한 무리의 시체를 발견한다. 총상을 입고 애타게 물을 원하는 한 사람을 외면하고 트럭에 실려 있던 마약을 발견하고는 머릿속이 번뜩인다. '다른 한편은 돈 가방을 들고 있겠구나...' 나라면 도망가다 어디에서 쉴까? 나무 그늘! 모스는 추적 끝에 나무 그늘에서 죽은 사람 옆 돈 가방을 발견한다.


돈을 챙겨 무사히 집에 돌아왔지만 물을 달라던 사람이 내내 신경 쓰인 모스는 물을 챙겨 다시 돌아가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고 돌아온 마약거래 조직원들에게 총격을 받고 도망친다. 한편 돈 가방을 찾으려는 킬러 안톤은 모스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서서히 범위를 좁혀 온다. 사건을 담당한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 또한 사건 해결을 위해 이들을 쫓는다.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추격하는 과정을 표현한 영상은 어둡지만 섬세하고,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는 짧은 컷들의 편집 또한 훌륭하다. 영화의 절반은 음악이 차지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 영화엔 멜로디도 거의 없다. 오로지 영화를 구석구석을 가득 메운 은유와 그 어떤 장르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섬세한 묘사가 빼곡하다. 총 든 두 사내가 작은 모텔에서 대치하는데 음악 한 줄 없이 그림자와 숨소리로만 궁극의 긴장감을 연출하다니 놀랍다. 국도 옆 가게와 모스 아내의 집에서의 동전 던지기는 대사와 표정연기 등 디테일에서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굳이 나를 해칠 필요는 없잖아요."

"없지. 그런데 당신 남편과 약속을 했어. 돈 가방을 가져오지 않으면 널 죽이겠다고."


안톤은 시종일관 무표정하지만 입가에 미소가 아주 잠깐 스칠 때가 있다. 그는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연민하지도 않지만 살인이 일어날 지도 모를 때 찰나의 미소가 흐른다. 모스는 이미 죽었지만 안톤은 그의 아내를 찾아 간다. 남편도 죽은 마당에 굳이 나까지 해칠 필요는 없지않느냐는 그녀의 말에 안톤의 대답이다. 그러곤 또 동전을 던져 맞춰보란다. 그녀를 죽이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안톤은 그녀의 집을 나와 구두 밑창을 확인했다.



살인자 안톤 쉬거(Chigurh)는 이상한 스펠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연'을 가장한 악마를 존재하지 않을 것같은 이름의 사람으로 관념화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건들은 우연히 발견하고 일어났다. 거대한 카오스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필연이라고 믿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동전던지기와 같은 우연한 삶이라는 말일까.


은퇴를 앞둔 늙은 보안관 에드는 나이가 들면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죽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갈 나이가 되어도 그 뜻은 알 수 없다. 노인의 연금을 노려 사람을 죽이고, 에드가 직접 체포해 전기의자로 보낸 14살 소년도 죄책감 없기는 매 한가지. 노인이 됐어도 이해할 수 없는 악마 같은 우연한 인생들. '모든 것'을 걸고 동전을 던져야 하는 인간은 앞면, 또는 뒷면의 우연을 살 수 밖에 없는 걸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말은 세상을 이해할 정도로 인간은 오래 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는걸까. 아니면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제목이 더 어렵다.


이미지 맵

언젠간날고말거야

언젠간날고말거야™의 여행블로그. 국내여행기, 해외여행기, 영화리뷰 등을 다룹니다.

    ✔ '영화/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