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철당간'이 있는 국내 사찰 세 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요즘 철당간의 아름다움에 빠졌습니다. 아내는 저더러 철당간 성애자라고 하네요. ㅎㅎㅎ 현재 우리나라에는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대부분 소실되고 처음 만들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철당간은 세 곳에만 있습니다. 공주 갑사, 안성 칠장사, 그리고 청주 용두사지 터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철당간이 어지간히 큰 사찰에는 대부분 있었지만, 여러 전쟁으로 파괴되고 일제가 무기를 만드려고 징발했고,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흥선대원군이 헐어갔다는 등등의 이유로 현재는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 철당간(鐵幢竿)은 뭘까?


한자로는 당(幢)은 깃발을 말하고 간(竿)은 긴 막대기를 뜻하니, '깃발을 걸어두는 길다란 막대기'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사찰 앞에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기리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으로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걸어두었어요. 길다란 철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의 버팀목을 '당간지주'라고 부릅니다.


1. 충청남도 공주시 갑사 철당간 지주(보물 제256호)



공주 갑사 철당간(公州 甲寺 鐵幢竿)은 충남 공주시 갑사에 있습니다.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했던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의 당간입니다. 갑사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일으킨 화엄종의 10대 대찰 중에 하나였고, 지주 받침돌 옆 인상 조각으로 미루어 그 무렵에 만들어졌을 거로 추측해요.






지름 50센티미터의 철통 24개를 세로로 이은 당간의 높이는 15미터에 이릅니다. 3미터 높이의 돌로 만든 지주는 보통 하부를 두껍게 상부를 얇게 조성하는데, 장방형으로 상하부 큰 차이가 없이 둔중해 보이고, 문양이나 장식 또한 없어요.





전체적인 구조는 기단과 당간지주, 그리고 철당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단은 넓은 돌 2장을 철정으로 고정하였는데 바깥에서 보기엔 소실되었는지 안으로 쑥 들어가 있는지 자리만 보이고 철정은 안보이더라고요. 남아 있는 다른 두 사찰과는 다르게 철당간의 두께가 두꺼워 둔탁하지만 웅장해 보입니다. 그리고 철통은 본래 28개였으나 1893년(고종 30) 7월 15일 벼락을 맞아 네 개의 철통이 소실되고 현재 24개만 남아있어요. 한간에는 일제강점기에 무기 만드려고 징발되었다가 일본의 패망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 철당간 지주(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9호)



경기도 안성시 이죽면 칠현산 자락에는 고려 초 혜소국사(慧炤國師)가 창건한 칠장사가 있습니다. 철당간의 위치는 독특하게 일주문 들어서기 전 도로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당시는 일주문 아래 도로까지 사찰의 부지가 아니었나 짐작됩니다. 내려오는 전설로는 칠장사가 있는 칠현산 지형이 배 모양과 같아 돛대로써 이 당간지주를 세운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조선 시대 풍수지리설과도 관련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형태는 화강암으로 만든 3미터 높이의 지주가 마주 서 있고, 그 사이 철로 된 원통형 당간이 세워져 있습니다. 애초에는 원통형 철당간이 30칸이었으나 어떤 연유인진 몰라도 현재는 15칸만 남아 있습니다. 갑사의 그것보다는 조금 얇은 43센티미터의 직경에 높이는 11.5미터에 달합니다. 아쉽게도 어떤 역사책에도 이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고려 이후에 조성되었다는 것만 알뿐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3. 충청북도 청주시 용두사지 철당간 지주(국보 제41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용두사지 철당간(龍頭寺址 鐵幢竿)은 현재 청주 도심 한가운데 있습니다. 다른 두 곳과는 다르게 현재 용두사지라는 사찰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덩그러니 철당간만 한때 이곳에 절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당간은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미터의 높이인데요. 올라 갈 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높지만 안정감이 있습니다.






원래 철당간은 속이 빈 철통을 이어 붙여 올리는데, 용두사지의 것은 속에 콘크리트가 들어 있습니다. 미적 감각 제로인 일제에 의해 제대로 보수하지 않고 편리에 의해 속에 콘크리트를 부었습니다. 고려시대에 원통으로 된 쇠로 20미터가 넘는 60척의 높이를 빈틈없이 세웠다는 걸로 봐선 당시의 주물기술과 건축기술이 상당했다는 증거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높은 고려시대 문명 수준과 용두사지 철당간의 역사적 가치가 저평가되었으니, 다시금 관심을 기울이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보 1호로 지정해도 손색없다고 말했지요.






공주와 안성의 그것과는 다르게 청주의 철당간에는 세울 당시 관여했던 사람의 직책과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고, 건립연대와 내력을 알려주는 393 글자가 해서로 양각돼 있습니다. 내용은 청주에 사는 김예종이라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사촌형인 희일과 함께 부처님께 철통 30단을 주조해 높이 60척의 철당을 세웠다고 연대와 이력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어요. 고려 광종은 960년에 중국과 동등하다는 의미로 '준풍(峻豊)'이란 연호를 사용했는데, 준풍삼년(峻豊三年)이라 적혀있는 걸로 미루어 962년에 철당간이 세워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국의 철당간이 자연적으로 번개 맞거나 풍화되어 없어진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수많은 침략과 전쟁,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소실되고 이제 딸랑 3개만 살아 남았습니다. 이것 조차도 어쩌면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도올 선생의 말처럼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남아 있는 것들이라도 주변을 공원화해서 잘 보존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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