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에 찬 현대인를 위한 따뜻한 처방전. 영화 '그린 북'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아카데미시상식 시즌이 되면 괜히 바쁘다. 봐야 할 영화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수상한 작품 중에서 내 눈에 들어온 작품은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받은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Green Book, 2018)이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마허샬라 알리는 지난번에 올렸던 리뷰 <문라이트>에서 마약상 '후안' 역할로 나왔었다. 그런데, 아카데미는 왜 매번 '주연'에게 '조연'이란 이름으로 상을 줄까? 상 못 받으면 억울할 것같은 주연이라 그런가? 근데 진짜 '조연'들은 좀 억울하겠는데... 암튼...


노예해방은 1865년 미국 링컨 대통령 때의 일이다. 그 후, 100년이 지난 1960년대 미국은 진정한 흑인 해방이 이루어졌을까? 천만에, 사고팔지만 않았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노예제도가 합법이던 1800년대와 똑같았다. 유색인종은 갈 수 없는 식당, 술집, 호텔이 있었고, 거주가 제한된 도시가 있는가 하면, 심야에 밖에 돌아다닐 수 없는 주도 있었다. 버스도 백인이 먼저 타야 하고 뒤에 탄 흑인은 그어놓은 선 안에만 머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린 북>의 배경은 흑인 차별이 극심하던 1960년대다. '인종차별'이라는 해묵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줄거리는 낡지 않았다. 천재적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가 백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를 고용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다. 당시로선 백인이 흑인 보스를 위해 운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직장을 잃고 돈이 필요했던 토니는 개의치 않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8주 동안 돈 셜리의  크리스마스 공연의 대장정을 함께 한다.


증오에 찬 현대인을 위한 따뜻한 처방전


그린 북(Green Book)은 실제로 1960년대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를 여행하기 위한 가이드북이었다. 험한 꼴 보지 않으려면 유색인종 전용(For Colored Only) 호텔, 식당, 술집을 찾아가야 했는데 그런 정보를 담은 책이다. 뉴욕의 우체부였던 '빅토르 휴고 그린'이 1936년부터 실제로 만들어 팔았는데, 1964년 미국인권법이 제정되기 전 30년 동안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미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에겐 거의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책의 전체 이름은 '열 받지 않고 여행하기 위한 흑인 운전자의 그린 북(For vacation without aggravation. The Negro Motorists' Green Book)'이다.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도 있겠지만, 나는 음악이 가장 좋았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실제 셜리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놓칠 순 없지. 피터 패럴리 감독은 셜리가 실제로 연주했던 곡들과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작곡가 라벨, 거슈윈의 곡들을 영화 음악에 사용했다. 흐릿해져 알아먹기 힘들어진 음반 원곡은 새롭게 편곡하고 그의 연주 기법을 살려 '돈 셜리'의 개성 있는 음악 세계를 거의 완벽히 복원했다.


1960년대를 그대로 간직한 뉴올리언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클래식 자동차, 빈티지 가구, 도로 표지판까지 그 시대의 디테일을 완벽히 살린 것도 매력적이다. 이 영화, 참 따뜻하고, 즐겁고, 기쁘다. 증오로 가득 찬 현대인을 위한 따뜻한 처방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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