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화의 황금기 엿보기, 수원 '화성행궁'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수원에는 조선후기 문화의 황금기 한켠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있습니다. 오늘 구경하실 화성행궁과 행궁을 포함한 수원 전체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수원화성' 또한 황금기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는 아주 멋드러진 구경거리죠. '행궁(行宮)'이란 왕이 지방으로 먼 길을 나설 때 중간에 임시로 머물거나 전쟁, 휴양, 능원 참배 등의 이유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만들어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오늘 가보실 '화성행궁'의 용도는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입니다. 아마도 화성에 있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융릉'에 가려고 머물렀던 곳이 아닐가 싶군요. 그리고 훗날 정조 자신도 효의황후와 함께 아버지 옆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건릉'이라고 지었습니다. 현재 이 곳을 '융건릉'이라고 부릅니다. 융건릉을 다음에 한번 포스팅 하기로하고 오늘은 화성행궁부터 구경해보도록 할게요.

 

김홍도의 '화성행궁도(華城行宮圖)'. 화성이 옛날엔 이렇게 생겼었군요.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림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정문인 신풍루로 들어갑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의 현륭원(융릉)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을 축조했습니다. 그리고 한양에서 아버지의 묘에 참배하러 가기위해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을 만들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화성행궁이 규모나 기능면에서는 으뜸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승하하신 뒤 순조, 헌종, 고종 등의 왕들이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이곳은 수원화성 성곽과 더불어 단순히 왕이 머물렀던 건축물이 아니라 개혁적인 계몽군주였던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 정치적, 군사적인 의미가 매우 큰 곳입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군요. 늦가을에 찾은 곳이였짐나 날씨가 매우 따뜻해서 반팔입은 사람들도 보입니다.

 

 

 

 

 

 

수원의 풍경은 참 예쁩니다. 단풍이 진 산꼭대기에 수원화성의 '서장대'가 보이는군요. 봄에는 벚꽃을 포함한 온갖 꽃들로 옷을 갈아입고 가을에도 꽤 운치있는 곳입니다. 여기 화성행궁 뒷길로 나가 성벽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수원화성을 구경하실 분들은 포스팅 가장 아래에 링크 걸어둘께요.
 

 

 

 

 

 

죽은 나무 같지만 천년을 거뜬히 살아남아 아직까지 꽃을 피우고 있군요.

 

 

 

 

 

 

주말이라 그런지 행궁내부 중앙문 근처에는 아이들과 같이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한지로 부채를 만들어 볼 수 도 있고,

 

 

 

 

 

 

작은 악세사리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한지공예도 배워볼 수 있고,

 

 

 

 

 

 

혁필을 예쁘게 그려주시는 할아버지도 계셨습니다.

 

 

 

 

 

 

중앙문을 들어오니 또 다른 체험공간들이 나옵니다.

 

 

 

 

 

 

떡매를 때려 떡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장군이 된 마냥 갑옷과 투구를 써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한지만들기, 한과만들기, 규방공예, 도자기만들기 등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더군요. 구경만하는 관광지에서 같이 체험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는 참 좋군요.

 

 

 

 

 

 

 

 

 

 

 

여긴 뒤주체험이란 곳이였습니다. 사도세자처럼 해보겠다며 조카도 저길 들어갔습니다. ㅋㅋㅋ 사도세자에 관한 설은 몇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성격이 포악하고 괴팍한데다 정신병까지 있었고, 궁밖으로 나가 여승을 범하는 등 주색잡기에만 열중하다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에 가두어 7일만에 죽었단 설과 정조가 노론을 지지하고 사도세자는 반대파인 소론을 지지했는데, 그가 훗날 정권을 잡으면 숙청될게 뻔한 노론세력이 그를 모함해서 뒤주에 가두어 죽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훗날 이런 모함을 알게된 영조가 그의 아들인 정조를 매우 아껴 왕이되었다는 설도 있답니다. 아무튼 그의 나이 향년 28세때였습니다.

 

 

 

 

 

 

이 건물은 '유여택' 이란 현판을 걸고 있는데요, 정조가 행차하시면 여기서 신하를 접견하던 곳입니다. 이곳이 전국으로 유명세를 탄 이유는 영화 <왕의 남자>와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부터였습니다. 대체 대장금은 전국에서 안찍은 곳이 없어요. 제주도에서도 찍었드만...ㅎㅎㅎ 아무튼 이곳에는 영화촬영 당시 입던 옷들을 직접 입어보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화성행궁 내 고유의 건물마다 모양이 다른 스탬프가 배치되어 있어요. 도장에는 건물의 이름과 용도가 간략하게 적혀있는데요, 총 여덟곳이 있습니다. 스탬프 찍는 종이를 5백원에 판매하고 있던데요, 아이들이 이거 찍느라고 아주 열심히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네요. 조카들도 이거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ㅎㅎㅎ

 

 

 

 

 

이 문으로 들어가면 복내당이 나옵니다. 복내당은 임금이 없는 평상시에는 유수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유슈란 수도이외의 지역을 맡아 다스리던 정2품의 외관(外官) 벼슬을 말합니다.

 

 

 

 

 

 

담벼락 끝이나 구석탱이에는 작은 쪽문들이 나 있습니다.

그 옛날 일하는 여인네들이 벼슬아치들을 피해 다니던 길이겠지요.

 

 

 

 

 

 

부엌에는 옛날에 쓰던 물건을 전시해 두었고, 재현된 물건도 있습니다. 경복궁이나 다른 한양의 궁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죠.

 

 

 

 

 

 

건물만 구경해야하는 다른 행궁이나 궁궐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주방건물 한켠에는 궁에서 사용하는 그릇들과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직접 이리저리 만져보고 느낄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건물만보고 돌아가는게 아니라, 직접 그시절의 물건들을 만져보고 뒤집어보고하니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군요.

 

 

 

 

 

 

이곳은 봉수당인데요, 화성행궁의 정당(正殿)이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열렸던 곳입니다. 봉수당(奉壽堂)의 뜻은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으로 정조가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었습니다.

 

 

 

 

 

 

문을 열어두고 전시하고 있습니다.

 

 

 

 

 

 

 

 

 

 

 

옛날 봉수당에서 열렸던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조선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정조대왕시절에 회갑연을 얼마나 성대하게 치뤗을까 상상해 봅니다.

 

 

 

 

 

 

봉수당 뒷편으로 나 있는 길다란 길에 있는 담벼락엔 아주 긴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정조대왕이 수원으로 능행차하시던 모습을 단원 김홍도의 그림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전체 그림을 모두 단원이 그렸는데, 원본을 똑같이 동판에 그려서 붙여놨습니다. 장관입니다.

 

 

 

 

 

 

단원 김홍도, 반차도 (班次圖) , 개인소장 [그림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위와 같은 그림이 동판에 길게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모든 사람들은 표정, 손짓, 몸짓 하나하나 다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보시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그림들이에요. 이런 그림이 끊어지지 않고 50미터 정도 이어져있었습니다.

 

 

 

 

 

 

행궁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뒷편 언덕에는 '미로한정'이란 정자가 있습니다. 행궁 전체샷을 사진에 담을 분들은 빼먹지마시고요.

 

 

 

 

 

 

수원에 가신다면 꼭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드립니다.^^*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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