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를 이겨낸 예술의 힘, 영화 '피아니스트(2002)'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뭔 예술타령이냐고 하는 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고 할까요? 저 개인적으로도 먹고 살기 바쁘지만 예술을, 그 중에서도 특히 영화와 음악을 사랑합니다. 음악분야에서는 클래식과 재즈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랍니다. 대부분의 예술장르가 그렇겠지만, 음악이란 분야는 생산자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더 중요한 장르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만 보더라도 독일인 장교 호젠펠트가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생산자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아마 죽고 말았을 테니까요.

아무튼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 대학살, 이른바 '홀로코스트'[각주:1] 마저도 이겨낼 수 있었던 '스필만'의 예술혼을 이야기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도 영화입니다. 2001년에도 미하엘 하네커 감독의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었는데요, 그 영화와 혼돈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목은 같을지언정 내용은 완전히 다른 영화에요. 어떤 영화인지 들어가 볼까요?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화영화인데요, 로만 폴란스키 감독 또한 유대계 폴란드인인 어머니를 나치의 가스실에서 잃었습니다. 실화에다 똑같은 상처가 있는 감독이 만든 영화라 더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로 2002년 칸 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개부문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했습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939년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피아니스트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 Adrien Brody)은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갑자기 독일군의 폭격이 시작됩니다. 폴란드는 독일의 점령에 들어가고 나치는 유대인을 집요하고 잔인하게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스필만은 가족과 함께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에 실려갈 뻔 하지만 그를 알고 있는 나치의 앞잡이에 의해 홀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이렇게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간신히 목숨만 구한 스필만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폐허가 된 건물의 다락방에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버티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은신처에서 양동이에 담긴 구정물과 썩은 감자 두 개로 간신히 연명하던 스필만은 주방에서 따지 않은 통조림을 발견합니다. 그 통조림을 벽난로에 있던 삽과 부지깽이로 따려고 하다가 깡통이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깡통이 맘춘 자리에는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장교가 묻습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나?"

"깡통을 따려고..." 스필만이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무슨 일을 하나?"

"저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쳐봐" 피아노 옆에 선 장교는 스필만에게 명령합니다.

 

 

 

 

 

 

스필만은 너무 굶주려 힘없는 가녀린 손을 피아노 건반에 올리며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느린 듯 힘겹게 건반을 짚어가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손가락은 빨라지고, 마침내 클라이맥스에선 억눌렸던 예술혼을 불사르기 시작합니다. 이를 지켜 본 호젠펠트 독일군 장교는 그에게 음식을 매일 가져다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군은 러시아군에 밀리기 시작하고 철수하는 날, 장교는 그에게 마지막 빵이라며 스필만에게 음식을 건네고, 입고 있던 따뜻한 외투까지 벗어주며 묻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뭘 할건가?"

"다시 연주를 해야겠죠..." 스필만이 대답합니다.

 

"이름이?"

"스필만..."

"스필만이라.... 피아니스트다운 이름이군."

 

 

 

 

 

 

이 영화는 쇼팽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명작입니다. 영화 처음 시작부터 잔잔하게 흐르는 쇼팽의 야상곡 20번부터 발라드까지 한 예술가를 살린 쇼팽의 음악들이 잔잔히 흘러 나옵니다. 그리고 신들린 듯한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와, 제작비 3천5백만 달러나 들여 만든 전쟁폐허가 된 잿빛의 바르샤바 도시풍경, 그리고 전쟁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예술혼을 불어넣어 인류의 마지막 양심을 뒤흔들어 놓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능력이 매우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실존인물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2000년도 향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능력을 높이 사고 그에게 음식을 매일 같이 가져다 준 독일인 장교 호젠펠트는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도 전쟁영화로서도 매우 훌륭하며, 음악을 좋아한다면 더 없이 훌륭한 음악영화일겁니다. 추천드립니다.

 

 

 

  1.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독일이 자행했던 유대인 대학살을 말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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