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100개의 웅덩이를 지나야 만나는 '백담사' | 인제여행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설악산 깊고도 깊은 산자락에 묻혀 있는 백담사란 사찰이 있습니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 죄를 짓고 세상을 피해 머무르며 명소가 된 곳이죠. 워낙 깊은 산속에 숨어 있어 소수의 사람만이 찾던 백담사는 이제 버스가 쉴 새없이 사람을 실어 나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절은 신라 진덕여왕 원년인 647년에 지장율사가 한계령 부근에 창건하고 한계사라 이름하였어요. 이후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는데, 조선 정조대왕 시절에 백담사라 개칭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담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7km의 산길을 올라가야 해요. 길 옆으로는 깎아지르는 절벽 계곡이 끝없이 따라다니는데요, 그 중간에 백 개의 물 웅덩이를 지나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백담(百潭)이란 백 개의 물 웅덩이를 뜻합니다.



큰 길에서 사찰까지는 대략 7km 떨어져 있어요. 차량은 진입할 수가 없어 걸어가면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요. 마을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있기 때문에 버스 타고 올라가면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버스를 타더라도 편도 15분 정도는 걸립니다. 그런데 버스요금이 성인 편도 2,300원으로 생각보다 비싸네요.







버스에 내리니 길다란 다리가 나오고, 그 너머에 절간이 있나 봅니다. 일기예보에선 분명 비 소식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푸른 기운으로 대단히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었어요. 사찰 뒤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면 다섯 살 동자 스님의 깨달음이 숨어 있는 오세암이 있고, 한국의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봉정암이 백담사의 부속사찰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찰 앞은 백담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네요. 강바닥은 전부 자갈로 되어 있는데 근래 본 가장 큰 계곡이었어요. 이렇게 깊은 산속에 어마어마한 계곡이 숨어 있었다니! 계곡 저편으로 겹겹이 둘러싼 설악산 산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얼마나 깊은 산속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안개가 끼어 흐릿하긴 하지만…







일주문은 버스 타고 지나쳐 버려서 사진을 담을 수가 없었어요. 버스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면 처음 만나는 문이 ‘금강문’입니다. 이 문은 사찰 입구인 일주문 다음에 보통 위치한 문인데, 일주문이 상징적인 문이라면 금강문은 사찰의 실질적인 대문 역할을 합니다. 내부에는 ‘인왕상’이라 부르는 두 명의 금강역사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인왕문’이라고도 보통 부르죠.







금강문을 들어서니 ‘백담사’란 현판을 달고 있는 작은 문이 있네요. 주변에 벽이 없으니 이걸 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사찰의 문 구조를 충실히 따르려는 의도인 것 같네요. 보통 금강문이나 사천왕문 뒤에는 해탈문(解脫門)이나 불이문(不二門)이 있죠. 마치 어느 사대부 양반집 대문 같이 생겼네요.







사방으로 첩첩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경내는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고요합니다. 태풍이 오더라도 바람이 불지않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사찰 앞마당 보리수 아래는 독립선언서 33인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시가 적힌 시비가 두 개 놓여 있네요. 이 시는 만해 선생이 어느 날 문풍지 떠는 소리에 큰 깨달음을 얻고 지은 오도송(선승이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시) 선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잘 알고 있듯 만해 한용운 선생은 일제강점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시인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그의 대표적인 시인 ‘님의 침묵’은 이곳에서 만들어졌고, 근본을 잃어가던 한국의 불교를 민족불교로 발전시킨 만해의 사상은 백담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규모가 그리 크지않은 사찰이라 둘러보는 데는 30분이 채 안 걸리네요. 근처 암자까지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참 좋겠습니다. 앞에 석탑 뒤에 극락보전이 있군요. 극락보전 왼쪽에 있는 전각이 그 유명한 화엄당입니다.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대사 덕분에 어쩌면 만해 한용운 보다 전두환 전대통령 때문에 더 유명해진 전각이죠. 1988년 11월 친구였던 노태우 전대통령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이곳에서 2년여를 머물렀던 곳입니다.








극락보전 안에는 조선의 영조 시절에 만들어진 불좌상이 하나 있어요. 사진의 가운데 불상입니다. 나무를 깎아 만든 87센티 정도의 작은 불상인데요. 오른손을 어깨까지 들고, 왼손은 다리 위에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인자한 모습이네요. 불상 내부에서 이 상을 만들게 된 배경과 시기를 알 수 있는 발원문과 노란색 저고리, 그리고 유리와 수정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보물 제118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극락보전보다 더 유명해져버린 화엄당. 백담사에서 한용운과 전두환의 옛 모습을 찾는 이들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합니다. 한용운의 호는 만해(卍海)이고, 전두환의 호가 일해(日海)이니 한 전각에서 두 개의 바다가 만났네요.







이 좁은 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 두 유명인사. 이 방에선 국민에게 칭송 받는 한 분의 흔적은 없고, 지금도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다른 한 분은 사용하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군요. 참 아이러니합니다.








사찰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한용운 선생이 백담사에서 느꼈을 감성이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그리고 ‘님의 침묵’이란 시를 다시 꺼내 읽어 봅니다. 이 시는 전두환씨의 쿠데타와 학살을 오버랩 시키더라도 감정선이 정확하게 들어 맞네요. 두 개의 바다는 ‘님의 침묵’에서도 만나나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하다 절간 앞 개울로 나가려고 걸어 나오니 뭔가 엄청난 것들을 발견했어요! 개천 옆으로 누군가 소원 돌탑을 엄청나게 쌓아 뒀어요. 그 수가 어마어마한 걸 보니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나 봅니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닿는 끝까지 돌탑을 쌓아 뒀네요. 물 흐르는 위로도 쌓인 걸 보니 웬만큼 물이 많이 흐르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나 봅니다. 제가 볼 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소원 돌탑 지역인 것 같네요.







물은 또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개천 바닥에 흙도 없으니 물이 더 없이 맑습니다. 잠깐 내려가 세수 한번 하는데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네요. 사찰도 사찰이지만 이 백담계곡 때문에라도 꼭 와봐야 할 곳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사람 키만큼이나 높이 탑을 쌓아 뒀어요. 저 탑에 쌓인 소원은 하늘에 좀 더 가까우니 이루어질 확률이 높을까요? 저도 저 꼭대기에 조약돌 하나 쌓아 봅니다.







백담사는 제가 찾아갔던 곳들 중에서 가장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이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만해 한용운과 희대의 범죄자라 누구나 알고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 이 두 사람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재미난 곳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사찰 앞의 백담계곡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기 때문에 인제여행에선 빼놓지 말고 다녀와 보세요. 후회하지 않을 곳입니다.


+ 입장료는 무료이나 왕복 버스요금 4,600원이 있음.



1박2일 인제여행코스 8편 계속...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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