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아름답고 무기력한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영화 속의 그 어떤 살인, 전쟁, 난리법석이 일어 나더라도, 관객인 우린 늘 안전하다고 느낀다. 단지 스크린 속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절대 현실과 넘나들 수 없는 스크린 너머에서 세상이라 그 폭력에 우린 서서히 무뎌지고 있다. 그 '안전함'을 뛰어넘기 위해 늘 새로운 폭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선악의 논리를 넘어, 혼돈스러운 회색논리로 그 안전함을 허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고 알려진 멕시코의 후아레즈. 마약과 살인으로 점철된 이 도시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적 에너지는 폭발하고 있었다.


멕시코 마약조직 카르텔이 국경지역인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어린이 납치와 살인 등 잔혹한 범죄를 일으키자, 미국은 FBI와 CIA로 구성된 대응팀을 꾸린다. 대응팀에는 FBI 소속 케이트(이밀리 블런트)와 CIA 요원 멧(조슈 브롤린), 그리고 작전 고문으로 투입된 '해결사'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가 합류했다. 이들의 목적은 카르텔의 보스를 추적하고 그를 체포하는 것. 그리고 인구의 20%나 되는 마약 사범을 모두 체포할 수 없다면 카르텔을 미국이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



대략의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 범죄조직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관객에게 '이 세상은 안전하게 보일 뿐 이제 안전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카르텔 보스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FBI 케이트는 범죄조직 보다 더 잔인한 CIA의 모습을 목격하고 이들과 대립한다. 법 정의와 원칙을 지키려는 케이트, 통치의 범위를 벗어나 버린 범죄 도시 후아레즈를 최대한 통제 가능한 도시를 만들려고 불법과 살인도 마다않는 현실주의자 CIA 멧.

더 무서운 건 이런 일들이 미 정부의 암묵적 동의 속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합법적인 목적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도 된다는 걸까? 정의를 지키고 싶은 케이트는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 굉장히 무기력하다. 우리는 늘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힘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에서 법과 정의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만 알게 될 뿐이다. 이 영화는 많은 부분 각색되었지만, 실제 미국과 멕시코 정부가 벌였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체포 작전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두 번이나 체포했지만 마약왕은 최근 또 탈옥해서 잠적했다.


'시카리오'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있는 치와와 사막을 중심으로 황량하고 건조한 색채로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멀리서 총성이 울리고 목이 잘린 시체들이 길 가에 매달려 있지만, 하늘은 또 무심하게 서로 다른 아름다운 색으로 층층이 물든다. 이러한 모순의 무법 지대를 굉장히 덤덤하지만 아름답게 표현한 영상미와 현실을 바라보는 빌뇌브 감독의 날 선 시선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결국 붙잡힌 마약왕이 CIA가 고용한 해결사 알레한드로에게 말한다. "우리가 누구에게 배웠을까?" 무섭고, 아름답고, 무기력한 영화다. 오랜만에 대단한 수작을 만났습니다. 추천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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