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가 단양의 절경을 만나고 어떻게 화폭에 옮길까 1년이나 고민했다죠. 단원의 그림을 따라간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은 이곳 사인암이었습니다. 남한강의 한 줄기인 남조천을 따라 구비구비 소(沼)를 이루며 흐르는 물길 옆으로 50미터의 기암괴석이 하늘로 우뚝 솟았습니다.
고려시대 임금을 모시던 정4품의 사인(舍人)이란 벼슬아치가 이곳에 다녀갔다 해서 '사인암(舍人岩)'이라 이름 붙었다고 하는데, 평소에 단양 군수도 못 보는 시골 촌구석에서 궁궐에서 나랏님을 보필하는 사람은 지금의 방탄소년단 보다 더 인기가 높았을 겁니다. 당시 이 지역 연풍 현감의 직급이 종6품이었으니 정4품의 위세는 사인암보더 다 높았을 지도 모르죠.
아무튼, 사인암은 단양팔경의 제4경에 속하며 2008년에 명승 제4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김홍도필 병진년화첩 / 사인암도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제가 어릴 때 심취해서 읽던 故 오주석 선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한국의 미 특강> 등의 한국화에 관한 책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있어요.
푸른 산 붓질 없어도 천 년 넘은 옛 그림이여. 맑은 물 맨 줄 없어도 만 년 우는 거문고
천 년이 넘은 산은 있는 그대로 그림이 되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는 거문고 소리처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 어떤 기교 높은 화공이 자연을 그리고 악공이 소리를 흉내 내더라도, 자연과 아름다움을 다투는 일은 부질없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인간은 가소로운 기술로 한낱 자연을 모방하고 있다는 걸 옛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사선대(四仙臺)
차를 세우고 만난 남조천의 사선대(四仙臺)는 생각보다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괴산, 문경, 제천, 단양 등 이 동네 개천은 바닥이 모두 바위로 되어 있어 굉장히 이색적이에요.
우탁선생기적비(禹倬先生紀蹟碑)
처음에 '사인암'이란 이름의 유래를 말할 때 언급한 정4품의 벼슬아치는 우탁 선생이었습니다. 설마 비석까지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사인암 옆에 우탁의 이야기를 기록한 비석도 하나 서있더라고요.
우탁선생 비석을 지나고 저 멀리 출렁다리를 건너면 청련암이 나옵니다.
출렁출렁, 근데 이건 안 무서워요. 바닥이 낮아 떨어져도 죽지 않을 거란 믿음이 불쑥~ ㅎㅎㅎ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사인암.
사인암 앞에는 1796년의 김홍도처럼 화가가 여전히 많습니다.
사인암은 하늘을 향해 뻗은 암벽의 선명한 격자무늬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자리 잡았는지 정상 바위틈의 노송이 정적인 암벽에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
단양팔경 중 하나인 사인암 / 명승 제47호
다들 그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절벽의 끝 몇 그루의 노송과 화폭 오른쪽 아래로 물이 흐르는 남조천을 슬쩍 그려 넣은 게 단원의 그림과 비슷하네요.
출렁다리를 건너면 청련암을 만납니다. 고려말에 흥했던 대흥사의 말사였다는데 작은 암자가 웅장한 극락보전(極樂寶殿)까지 갖추고 있는 걸로 봐선 규모가 쪼~끔 컸나 본데요.
여긴 청련암 주지스님이 기거하시는 오래된 건물. 옆으로 사인암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청련암(靑蓮庵)
스님이 키우는 백구 한쌍. 암컷은 지금쯤 출산을 했겠네요. 임신해서 특별히 방문 앞에 수건까지 깔아주셨더라고요.
사인암의 뒤편으로는 작은 암자로 올라가는 계단이 숨어 있습니다. 꼭 출렁다리를 지나 청련암에서 계단을 올라보세요.
사인암 옆구리에 있던 낙서들. 옛 사람들은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겨야 한다며, 산천의 바위에는 꼭 자기 이름을 부지런히 적어 두셨네요. ㅎㅎㅎ
옥순봉처럼 오르기 힘들지도 않고, 기암괴석 가운데로 계단까지 친절히 나있어 사인암 구경의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한낱 바위지만 뭔가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단양 여행에서 가 볼만한 곳 찾으신다면 바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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