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생 박문수가 암행어사가 된 까닭 '칠장사' | 안성 가볼만한 곳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경기도 안성에 기도빨 좋다고 소문난 '칠장사'란 사찰이 있습니다. 임꺽정의 스승인 병해대사가 입적하자 임꺽정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 봉안한 꺽정불도 있고, 매번 과거에 낙방하고 삼수생이었던 박문수가 과거시험 보러 가다 들러 기도한 곳도 칠장사입니다. 박문수는 칠장사 나한전에다 어머니가 주신 찹쌀유과를 올려놓고 기도해서 장원급제했다고 하죠.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현재까지도 수험생 부모들, 공무원시험 학생들이 '수험 기도사찰'로 유명합니다. 가람은 어떤지 들어가 볼까요~


역시 여행은 평일 낮 오후 3~4시쯤이 제일 좋아요. 어디든 혼자 다 가질 수 있거든요 ㅎㅎㅎ






일주문으로 들어가기 돌아 들어오던 길 가에서 본 칠장사 당간. 당간은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높은 철 기둥인데,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둡니다. 이 철 당간은 조선중기에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 현재 철 당간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은 이곳 이외엔 청주의 용두사지, 공주의 갑사에만 남아 있는 매우 희귀한 문화재라 할 수 있어요. 예전에 용두사지 철당간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궁금하면 아래 링크로 따라가세요.


국보 1호로 지정해도 손색없는 '용두사지 철당간' | 청주여행





아래 일주문에 주차장이 있는데, 오늘 같은 날은 가람 바로 아래도 한가합니다. 한가로운 절 투어 좋~습니다.






사천왕문을 돌아 들어가 범종각을 지나 응향각을 올라서면...





조선시대 지어진 대웅전과 고려 전기에 제작된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정남향으로 반듯하게도 서있네요. 빛바랜 현판과 단청으로 세월이 느껴집니다.






혹시나 국보로 지정된 오불회괘불탱이 여기 있나 찾아보니 여긴 없더라고요. 아마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나 봅니다.






꼭 보물이나 국보가 아니더라도, 절 벽에 걸어둔 탱화는 늘 품위가 있어요.






칠장사는 7세기 신라 선덕여왕 때에 지어진 사찰입니다. 고려 우왕때는 왜구의 침입으로 고려의 역조실록을 보관했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선 중요한 역할을 했었고, 조선 인조 원년에는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을 위한 원찰로 삼아 크게 중수했습니다.





안성 칠장사 오불회괘불탱(국보 제296호)


그런데 인목대비 이야기에는 약간의 뒷 이야기가 있어요. 인목왕후는 아시다시피 조선 14대 왕인 선조의 두 번째 왕비였고 혼인한 지 4년 만에 유일한 적자인 장남 영창대군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이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였어요. 이에 인목왕후와 아버지 김제남은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했는데, 선조의 급사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8살 난 영창대군을 뜨거운 방에서 데어 죽게 만들고 김제남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이에 인목왕후는 칠장사에 영창과 김제남의 위패를 모시고 천도재를 크게 올렸어요. 그리고 광해군과 대북파가 몰락하기를 부처에게 빌고 또 빌었다죠. 기도빨이 좋은 사찰인가 그 소원이 덜컥 이루어져서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인목왕후는 대왕대비로 복귀되고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의 신원 또한 복원됩니다.


인목대비는 소원을 이루어준 감사의 뜻으로 5년에 걸쳐 그리게 한 오불회괘불탱(국보 제296호)을 칠장사에 내려주었습니다.






탱화가 어찌되었든 따스한 햇살이 마냥 좋은 강아지들. 절간 개들 중에는 사나운 놈은 본 적이 없어요. ㅎㅎㅎ






대웅전 옆 원통전에서도 탱화를 잠시 구경하고...






아, 좋고나...






이 그림들도 역사와 세월이 만나면 보물이 되겠죠?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보물 제1627호)


그리고 박문수가 기도를 올렸다는 나한전에 들어가면 임꺽정이 만들었다는 꺽정불이 있고, 그 옆으로 인목대비가 직접 쓴 친필 칠언시 족자가 하나 걸려 있어요. 자신도 위험에 처해 칠장사로 피해있을 때 쓴 글로 추정되는데, 억울하게 죽은 친정 아버지와 아들 영창대군을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늙은 소 힘쓴 지 이미 여러해 (老牛用力已多年)

목이 부러지고 가죽은 헐었어도 잠만 잘 수 있으면 좋겠다 (領破皮穿只愛眠)

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충분한데 (犁耙已休春雨足)

주인은 어찌하여 괴롭게 또 채찍질을 가하네 (主人何苦又加鞭)


이이첨 등 대북파에 시달리는 자신을 늙은 소로, 광해군을 채찍질하는 주인에 비유했네요.





고려시대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


나한전 바로 앞에는 고려시대 혜소국사비가 있어요. 고려 광종 때 출가한 혜소국사의 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높이 241cm, 폭 128cm에는 위로 길게 용을 새기고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음각한 섬세한 글 또한 매우 아름답습니다.






사찰 옆 칠현산으로 오르는 산책로에는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도 있어요. 1723년, 삼수생이었던 수험생 박문수가 오늘날로 치면 SKY라 할 수 있는 진사과에 당당히 수석으로 장원급제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어사 박문수길이 있으니 한번 걸어보세요. 혹시 알아요. 박문수처럼 암행어사와 병조판서가 될지... 지금으로 따지면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국방부장관 쯤? ㅎㅎㅎ




✔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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