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여행, 안동가볼만한 곳 '도산서원'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이곳은 안동여행에서 마지막 코스로 들렀었던 곳입니다. 한국에서 퇴계 이황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도산서원을 안 가본 사람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여긴 처음왔으니까요. 그러고보면 한국도 좁은 땅덩이라고 하지만 안가본곳이 더 많은 것 같네요.

 

퇴계 이황은 연산군 7년(1501)에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나서 선조3년(1570)에 향년 7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거쳐 사후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셨습니다. 퇴계는 명종 16년(1561)에 도산서당을 세우셨는데요,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1574)에 문인과 유림이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서원을 세웠습니다. 이에 선조임금은 서원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이란 한석봉 친필 현판을 사액하여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자 ~ 어떤 곳인지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강을 끼고 나 있는 한적한 흙길을 한 1킬로 정도 걸어들어가면 있습니다.

 

 

 

 

 

 

서원으로 가는 길은 강을 끼고 나있는 길인데요, 강 건너편에 불쑥 올라온 독특한 건물이 하나 보이네요. 저 건물은 '시사단(試士壇)'이란 비각입니다. 저기는 조선 정조 16년(1792)에 정조가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陶山別科)'를 보았던 장소입니다. 도산별과의 총 응시자가 7,228명이었고, 임금이 11명을 직접 뽑아 시상하였다고 합니다.

 

 

 

 

 

 

서원에 도착했군요. 건물들이 산을 타고 올라가며 계단식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다른 서원들보다 규모면에서는 조금 큰 편인데요, 그래도 걸어서 30분 정도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답니다.

 

 

 

 

 

 

서원의 입구에는 '열정(洌井)' 이란 우물이 있습니다. 그 옛날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하네요.

 

 

 

 

 

 

입구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원이 층층이 위로 올라가며 계단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참 예쁜 정원입니다.

 

 

 

 

 

 

이 건물은 '농운정사(瀧雲精舍)라고 합니다. 서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던 건물이에요. 집의 구조가 특이하게 '공(工)'자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이는 퇴계선생께서 학생들에게 공부에 열중하라는 뜻에서 이렇게 짓도록 했다고 합니다.

 

 

 

 

 

 

기둥에 '도산서당'이라고 적혀있는 걸로 봐서 여기서 아이들 공부를 가르쳤나봅니다. 실제로 이 건물은 퇴계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서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우물은 '몽천(蒙泉)'이라 부릅니다.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인데요, <역경> 몽괘(蒙卦)에서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서당 앞 마당에는 '정우당(淨友塘)' 이라는 작은 연못에 연을 키우고 있습니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 몸을 더럽히지 않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고하죠.

 

 

 

 

 

계단 위의 '진도문(進道門)'을 지나면 좌우에는 동서 '광명실'이 있고, 거기를 지나가면 서원의 정당인 '전교당'이 나옵니다.

 

 

 

 

 

 

그런데 서원에 벌이 이상하게 많다고 느꼈는데, 건물의 구석에 벌들이 집을 짓기 시작했네요.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겠어요. ㅠㅠ

 

 

 

 

 

 

여기는 '광명실(光明室)'입니다. 전교당 앞에 있는 이곳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입니다. 좌우로 두개가 있는데요, 서고안의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의 형태로 땅에서 올려 지었네요.

 

 

 

 

 

 

이곳이 바로 '도산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 '전교당'입니다. 전교당은 퇴계 사후 4년 뒤인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된 대강당입니다. '陶山書院'이란 사액현판이 게시되어 있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액서원' 이란 임금이 현판과 노비, 서책 등을 하사한 시쳇말로 '국가공인' 서원을 말합니다. 즉 임금=국가가 인증한 서원이라 다른 서원과는 인지도면에서 급이 다른 서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자인데요, 이 현판에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일화는 이렇습니다.


퇴계 사후 5년 뒤인 1575년, 선조임금이 당대 최고 명필 한석봉을 불렀습니다. 사액서원에 보낼 글씨를 쓰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액(賜額)이란 임금이 직접 현판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선조는 부르는 대로 받아만 쓰라고 했습니다. "원, 서, 산" 한석봉은 열심히 받아 썼습니다. 마지막 글자를 "도"라고 불렀습니다. 그제야 석봉 한호는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퇴계를 기린 서원인 도산서원의 현판임을 알았습니다. 선조는 천하의 한석봉도 이 사실을 미리 알면 붓이 떨려 현판을 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단어를 거꾸로 부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 곳은 전교당의 우측 담장 너머에 있는 '장판각(藏板閣)'이라는 곳입니다. 서원에서 만든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고직사(庫直舍)'인데요, 서원을 관리하는 관리인들의 살림집입니다. 밥하는 아궁이 각종 물품창고 등이 많은 것이 사람사는 냄새가 나던 곳이였겠네요.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이 마당을 오고 갔을지 잠시 상상해봤습니다.

 

 

 

 

 

 

 

 

 

 

이곳은 가장 아래에 있던 '역락서재(亦樂書齋)'란 곳입니다.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에서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칠 때 정사성을 비롯한 뜻있는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운 곳입니다.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입니다.

 

 

 

 

 

 

서원 앞에서 바라본 시사단. 강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었는데 건너가 보지 않은게 후회가 되네요. 다음에 간다면 꼭 저기를 올라가 보고 싶네요.

 

 

 

 

 

 

 

중국을 비롯한 일본의 학문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

안동여행코스에 반드시 넣어야겠지요? 안동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드립니다.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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