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마녀사냥 영화 '더 헌트(The Hunt)'

여행, 익숙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소유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를 떠미는 것.

제가 최근에 리뷰했던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매즈 미켈슨의 2012년도 영화인 <더 헌트>를 몇 일 전에 봤습니다. 같은 해 칸 영화제에서 미켈슨은 남우주연상을 받고,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를 왜 이제야 봤는지 저도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만, 영화가 끝나고 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슴이 답답한 영화, 특히 누명을 쓰는 이야기를 극도로 싫어하는데요, 이 영화가 딱 그런 영화였거든요. 그것도 입에 담기도 싫은 아동성추행범이란 기가 막힌 누명으로 한 남자의 인생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립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봐야 그 누구도 어른의 말을 믿어주진 않습니다. 그냥 그는 기든 아니든, 싫든 좋든, '아동성추행범'이란 주홍글씨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의혹'으로 시작된 누명은 한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권과 연예계에서 이런 추잡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데요, 선거에서 상대편을 아무런 근거 없이 죄가 있는 사람처럼 몰아세워 놓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상대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명예실추와 선거에서의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이는 최근 10년간 일어났던 거의 모든 선거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연예계도 마찬가지로 '성폭행'이란 죄목을 쓰고 세간에 알려진 연예인들은 비록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람을 '성폭행'이란 키워드로 기억하지 무죄였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자, 이쯤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란 사회구조는 정말 안전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영화가 바로 마녀사냥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 헌트>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아내와 이혼 후 고향인 덴마크의 어느 시골로 내려와 유치원 교사를 하며 사는 평범한 남자 '루카스(매즈 미켈스)'가 있습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루카스를 좋아하는 여자 꼬마아이 '클라라'는 매일 자기와 놀아주는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하트모양의 팬던트 선물과 함께 선생님인 루카스의 입에 뽀뽀를 해줍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올바른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 "입뽀뽀는 엄마와 아빠에게만 하는거야, 그리고 이 선물은 니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주렴"이라고 다독입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그가 못마땅합니다. 그녀는 그대로 쪼르르 원장에게 달려가 "선생님이 막대기처럼 꼿꼿한 고추를 나에게 보여주고 하트 팬던트도 줬어요."라고 거짓을 고합니다. 나쁜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로 펴져나가고 루카스는 졸지에 성폭행범이란 누명을 쓰게 되고, 어린 시절 친구들까지 모두 등을 돌리고 작은 마을 공동체의 마녀사냥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잘 못된 믿음으로 유치원 교사였던 그는 하루 아침에 매장당했습니다. 나중에 클라라가 "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한 기억이 없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어른들은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아서 일시적으로 기억이 안 나는 것뿐이야."라며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하고만 있는 루카스가 안타까워 부모님께 "제가 아저씨에게 못 할 짓을 했나 봐요."라는 말엔 맘씨 착한 아이가 몹쓸 짓까지 당했다는 식으로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에겐 진실따윈 중요하지 않습니다. 응징해야할 죄인만 남았죠. 이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루카스에게 닥친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빙의 되어갑니다.

루카스와 그의 아들마저 동네 슈퍼마켓에서 출입금지를 당하고, 정육점에서 고기 한토막 사려다 폭행을 당하고, 어린 시절 친구들마저 모두 등을 돌리고, 이혼한 아내는 아들에게 아빠를 만나지 말라고 하며,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도 떠나갑니다. 집안의 창문으로는 돌멩이가 날아 들고, 혼자 산책하러 나갔던 강아지 페니의 시체도 검은 비닐에 쌓여 마당에 버려져 있습니다. 그의 죄가 무죄든 유죄든 상관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시민사회는 별 죄책감 없이 잔혹한 짓들을 스스럼없이 해대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이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고 있는 어디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15세기 마녀사냥도 그렇고 현대에도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해도 사람의 마음 속 기저에서 꿈틀거리는 본능적인 이기심과 무관심, 그리고 군중심리에 이끌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우리는 그들을 단죄하고 있는거죠. 그리고 결국 무죄라는 것이 밝혀지면 죽일 듯한 분노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무책임하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 하나도 없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때 '성폭행범' 의혹을 받았다는 주홍글씨를 세긴 사람의 고통은 금새 잊어버리는 대중들과는 달리 절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또 다른 얼굴의 '정의'라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정의로운' 시민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나를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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